시드니행 비행기 표를 끊는 순간, 가슴이 뛰었습니다. 몇 년 전 워킹홀리데이로 이곳에 머물렀던 시간들. 그때의 설렘, 도전, 그리고 성장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어요. 언젠가 꼭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던 그 약속을, 드디어 지키게 되었습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재회하고 싶었어요. 시드니와 브리즈번으로 다녀왔고, 예전에 일하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곳들, 다시 보고 싶었던 풍경들을 천천히 만나보고 왔습니다.
첫째 날 - 블루마운틴, 안개 속의 전설
첫날, 시드니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기차로 2시간 거리인 블루마운틴으로 향했습니다.
예전에도 다녀온 곳이지만 그때는 어려서 그런지 별 감흥이 없었는데, 꼭 다시 가보고 싶었던 곳이거든요. 역시 나이들었나봅니다.ㅋㅋㅋ

운무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쓰리 시스터즈 - 수백만 년의 시간이 만든 예술
에코 포인트 전망대에 섰을 때의 그 감동. 눈앞에 펼쳐진 쓰리 시스터즈(Three Sisters)는 사진으로 보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어요. 수백만 년 동안 풍화와 침식으로 만들어진 세 개의 거대한 바위 기둥. 원주민 전설에 따르면 마법에 걸린 세 자매라고 하죠.
잠비아(Jamison) 계곡을 가득 메운 유칼립투스 나무들. 나무에서 나오는 오일 때문에 산 전체가 푸른빛으로 보인다고 해서 블루마운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보니 정말 신비로운 푸른 안개가 계곡을 감싸고 있었어요.

구름과 안개가 걷힌 후 쓰리 시스터즈 풍경
오전에는 맑았는데 오후가 되자 갑자기 안개가 몰려왔습니다. 쓰리 시스터즈가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했어요. 실망할 뻔했지만, 오히려 이 몽환적인 풍경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았어요.

웬트워스 폭포 - 절벽을 따라 흐르는 은빛 물줄기
웬트워스 폭포(Wentworth Falls)로 이동했습니다. 300미터가 넘는 절벽을 따라 3단으로 떨어지는 폭포는 장관이었어요. 트레킹 코스를 따라 내려가면 폭포를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지만, 시간이 부족해 전망대에서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시닉 월드 - 스릴과 감동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케이블카, 시닉 레일웨이
시닉 월드(Scenic World)에서 케이블카를 탔습니다. 시닉 레일웨이는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케이블카로 유명하죠. 52도 경사로 급강하할 때는 정말 놀이기구를 타는 것 같았어요. 계곡 바닥까지 내려가는 동안 보이는 열대우림과 절벽의 풍경이 압도적이었습니다.
계곡 바닥의 보드워크를 걸으며 고대 열대우림을 탐험했습니다. 수백 년 된 나무들, 양치식물들이 빽빽하게 우거진 숲. 새소리와 물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공간에서 한참을 걸었어요.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 온전히 잠긴 시간이었습니다.
• 시드니 센트럴역에서 기차로 약 2시간 (Katoomba역 하차)
• 오팔 카드 사용 가능
• 시닉 월드 패스 추천 (케이블카, 스카이웨이, 레일웨이 포함)
• 날씨 변화가 심하니 겉옷 필수
• 오전이 날씨가 좋은 편 (오후엔 안개가 자주 낌)
• 최소 반나절, 여유있게 하루 일정 권장
시드니로, 그리고 추억 속으로
블루마운틴에서 돌아와 시드니 시내로 향했습니다. 기차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하나씩 익숙해지기 시작했어요. 이 거리, 이 건물, 이 풍경. 몇 년 전 매일 지나다니던 곳들이었습니다.

현대적이면서도 고급스러운 VOCO 호텔
숙소는 달링하버 근처의 VOCO 호텔을 잡았습니다. 워킹홀리데이 시절엔 꿈도 못 꿨을 호텔이죠.
그때는 저렴한 백패커스 하우스에서 지냈으니까요. 그때에 비하면 많이 사치스럽긴 하지만 그시절의 허름한 숙소도 그 나이만 누릴 수 있는 특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첫 번째 저녁, 한식이 그리워

매콤한 오징어볶음과 시원한 음료 - 역시 한식이 최고
워킹홀리데이 시절, 한식이 그리워 자주 찾았던 한식당이 있었어요. 타운홀 근처의 작은 식당이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갔습니다. 다행히 아직도 그 자리에 있더군요! 주인아주머니는 바뀌셨지만, 오징어볶음 맛은 그대로였어요.
매콤달콤한 오징어볶음 한 입, 밥 한 숟가락. 시원한 음료 한 모금. 그 순간 몇 년 전의 기억들이 물밀듯이 밀려왔습니다. 이 식당에서 힘든 하루 일과를 마치고 친구들과 저녁을 먹던 날들. 한국 음식을 먹으며 향수병을 달래던 밤들. 모든 게 어제 일처럼 생생했어요.
둘째 날 - 시드니의 상징을 만나다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오늘은 이 도시의 상징,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를 제대로 둘러볼 계획이었어요. 워킹홀리데이 때는 멀리서 보기만 했지, 제대로 구경할 시간이 없었거든요.

시드니의 명물,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가 한 프레임에
서큘러 키(Circular Quay)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예전에 수도 없이 봤던 광경들이었는데, 또 시간이 지난 후에 여유롭게 바라보는 모습이 예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더라구요. 푸른 하늘, 코발트빛 바다, 그리고 그 위에 떠 있는 듯한 하얀 오페라하우스. 뒤로 보이는 하버브리지까지. 이 풍경을 다시 보려고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왔구나 싶었어요.

가까이서 본 오페라하우스 - 조개껍데기를 닮은 독특한 건축미
오페라하우스에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1973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20세기 건축의 걸작으로 불리죠. 덴마크 건축가 요른 웃손이 디자인한 독특한 지붕 구조는 펼쳐진 조개껍데기 또는 돛을 연상시킵니다. 가까이서 보니 하얀 타일 하나하나가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더군요.

오페라하우스 내부 - 자연광이 아름답게 들어오는 구조
내부 투어에 참여했습니다. 콘서트홀과 오페라 극장을 둘러보며 이 건물이 얼마나 혁신적인 디자인인지 새삼 느꼈어요. 자연광을 활용한 설계, 음향을 고려한 구조, 모든 것이 완벽하게 계산되어 있었습니다. 공연장 내부모습도 볼 수는 있었지만 사진이 금지되어 있어서 찍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고른 소리의 울림과 관객석 전체에서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완벽하게 설계되어 있다고 하네요.
하버브리지 - 두 도시를 잇는 강철의 다리

1932년 완공된 하버브리지 - 여전히 현역인 강철의 예술품
(제가 사진을 좀 대충 찍는 편이라 뭔가 구도가 안맞고 어색한 장면이긴 하지만ㅋㅋㅋ) 오페라하우스에서 하버브리지를 바라봤습니다. 1932년에 완공된 이 다리는 시드니 CBD와 노스 쇼어를 연결하죠. 아치형 강철 구조가 웅장하면서도 우아했어요. 현지인들은 이 다리를 애칭으로 '옷걸이(Coathanger)'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다리 아래로 페리들이 지나다니고, 다리 위로는 차들이 끊임없이 오갑니다. 90년이 넘은 다리가 여전히 도시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시간이 있었다면 브리지클라임에 도전해보고 싶었지만, 이번엔 아래에서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특별한 점심, 오페라 바 앤 키친

오페라하우스가 보이는 레스토랑에서의 호화로운 점심
점심은 오페라하우스 근처의 오페라 바 앤 키친(Opera Bar & Kitchen)에서 먹기로 했습니다. 하버 뷰가 보이는 야외 테라스석을 예약했어요. 야채와 허브 크러스트를 입힌 램 스테이크를 주문했습니다.
음식 맛은 기대 이상이었어요. 호주산 램은 역시 다르더군요. 부드러우면서도 풍미가 깊었습니다. 하지만 음식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풍경이었어요. 파란 하늘 아래 반짝이는 바다,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가 보이는 이 자리에서 여유롭게 식사를 하다니. 역시 몇 년 전의 나에게는 상상도 못 할 순간이었습니다.
타롱가 동물원 - 도심 속 야생
오후에는 타롱가 동물원(Taronga Zoo)으로 향했습니다. 서큘러 키에서 페리를 타고 10여분.
시드니 하버를 가로지르는 짧은 크루즈였죠. 페리에서 바라본 시드니 스카이라인이 아름다웠어요.


위풍당당한 사자와 나무에 매달린 코알라 - 호주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
바위 위에서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수사자의 모습이 정말 위엄 있긴 했지만 사자는 어느 동물원이든 흔히 볼수 있어서 그닥 감흥은 없었던것 같아요.
이 동물원의 진짜 스타는 역시 코알라죠. 유칼립투스 나무에 매달려 낮잠을 자고 있는 코알라들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어요. 하루 20시간을 잔다는 코알라답게, 대부분이 곤히 자고 있더군요. 가끔 눈을 뜨고 나뭇잎을 씹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습니다.
유칼립투스 잎을 주로 먹으면서 생활하는데, 이 식물의 잎에는 약간의 알콜 성분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코알라는 항상 동작이 느리고 살짝 취한채로 산다고 하는데,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ㅋㅋㅋ
타롱가 동물원의 특별한 점은 바로 뷰입니다. 동물원 곳곳에서 시드니 하버와 오페라하우스가 보이거든요. 캥거루 우리 뒤로 시드니 스카이라인이 보이는 장면은 정말 독특했어요. 도심과 자연이 이렇게 가까이 공존하는 도시가 또 있을까 싶었습니다.
저녁, 그리고 생각

완벽하게 구워진 스테이크 - 하루를 마무리하는 만찬
저녁은 호텔 근처의 스테이크하우스에서 먹었습니다. 스테이크를 미디엄으로 주문했어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완벽하게 구워진 고기. 감자튀김과 신선한 샐러드가 나름 괜찮았던 것 같아요.
확실히 시드니는 제가 워킹홀리데이를 하던 때랑은 많은 부분이 달라진 것 같았어요. 우선은 물가가 많이 올라있었고, 인건비도 비싸서 이제는 배고픈 워킹홀리데이를 벗어날 수 있겠더라구요.ㅋㅋㅋ
도시도 깨끗해지고 첨단기술이 접목된 기반시설들을 보면서 세상이 정말 빨리 변해가고 있다는걸 새삼 깨달았지만, 추억속의 시드니가 점점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뭔가 기분이 묘했습니다.
그렇게 시드니에서의 짧은 여행을 마무리하고, 다음에는 골드코스트 여행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2025.10.03 - [여행·라이프] - 호주 여행기 2편 - 골드코스트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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